2004년 유럽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이변이 일어났다. 바로 그리스의 유로2004 우승이다. 당시 유럽은 프랑스를 비롯한 강팀들이 즐비했으며, 체코 역시 절정의 기량을 자랑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그리스가 이들 강호를 꺾고 정상에 오르면서 세계 축구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이 글에서는 당시 그리스의 우승이 왜 ‘이변’으로 평가받는지, 프랑스와 체코와의 비교를 통해 상세히 분석해 본다.
그리스, 철벽 수비로 역사를 쓰다
그리스는 유로2004 개막 전까지 유럽 축구 무대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팀이었다. 국제 대회 출전 경험도 많지 않았고, 전통적인 강호들과 비교했을 때 선수층이나 전술적 깊이에서도 부족함이 많았다. 하지만 독일 출신 감독 오토 레하겔의 부임 이후 그리스 대표팀은 완전히 다른 팀으로 거듭나게 된다. 레하겔은 선수 개인 능력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전술적 조직력과 수비 안정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4-5-1 포메이션을 고수하며, 수비라인을 깊게 내리고 중원에 밀집한 수비 블록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상대의 공격을 차단했다. 이러한 전술은 단기 토너먼트에서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특히 조별리그 1차전에서 개최국 포르투갈을 2-1로 꺾으면서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이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무승부, 러시아와의 경기에서는 패배했지만 골득실 차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당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프랑스를 1-0으로 격파했고, 준결승에서는 연장전 실버골로 체코를 꺾었다. 결승에서는 다시 만난 포르투갈을 상대로 또 한 번 1-0 승리를 거두며 결국 유럽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리스는 이 대회에서 단 5골만을 기록했지만, 실점은 고작 4점에 불과했다. 특히 세트피스를 통한 득점 능력이 뛰어났으며, 모든 선수들이 자신의 역할을 철저히 이행하면서도 팀을 위해 헌신했다. 감독과 선수 간의 전술적 신뢰, 모든 플레이어의 집중력, 그리고 철저한 준비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러한 성공 사례는 이후 많은 약체 팀들이 벤치마킹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스는 이 대회를 통해 '수비도 예술이다'라는 말을 축구계에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프랑스, 스타군단의 몰락
유로2004 당시 프랑스 대표팀은 단연 최고 수준의 전력을 자랑했다. 지네딘 지단을 중심으로 티에리 앙리, 파트리크 비에이라, 클로드 마켈렐레, 릴리앙 튀랑, 파비앵 바르테즈 등 세계적인 스타들로 구성된 라인업은 그야말로 ‘드림팀’이라 불릴 만했다. 유로2000 우승 이후 세대교체와 함께 전술적 완성도를 높이며 2004년 대회에서도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혔다. 특히 조별리그에서 잉글랜드를 극적인 역전승으로 꺾은 경기는 프랑스의 위력을 입증한 사례로 남아 있다. 하지만 8강에서 만난 그리스는 프랑스에 전혀 다른 축구를 요구했다. 프랑스는 주도권을 잡고 경기를 지배했지만, 그리스의 밀집 수비에 고전했다. 경기 내내 유효 슈팅 수는 많았지만 대부분 위협적이지 못했고, 반대로 그리스는 후반 20분경 안겔로스 하리스테아스의 헤더 한 방으로 앞서갔다. 이후 프랑스는 수차례 교체와 전술 변화를 시도했지만 골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 경기는 프랑스 축구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많은 이들이 ‘개인의 재능만으로는 전술적으로 완성된 팀을 이기기 어렵다’는 교훈을 얻었다. 지단과 앙리의 창의력도 그리스의 조직적인 압박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고, 미드필드와 수비진 간의 간격 문제도 드러났다. 프랑스 언론은 "스타군단이 하나의 팀이 되지 못한 대가"라며 혹평을 쏟아냈다. 이 패배 이후 프랑스는 2006년 월드컵까지 다시 전술을 재정비하고, 팀 중심의 전략으로 전환하게 된다. 결국 유로2004는 프랑스에게 있어 축구의 본질과 전략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 터닝포인트였다.
체코, 가장 강력했던 도전자
유로2004에서 체코는 ‘가장 아름다운 축구’를 했던 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파벨 네드베드, 밀란 바로시, 토마스 로시츠키, 카렐 포볼스키 등으로 구성된 체코는 빠른 템포의 패스 플레이와 유기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전술을 구사했다. 특히 4-1-4-1 또는 4-4-2 다이아몬드 전술을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활용하며, 각 경기마다 다른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팀이었다. 조별리그에서 체코는 강호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2골을 먼저 내주고도 3-2로 역전승을 거두며 전 유럽 축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밀란 바로시는 이 대회에서 무려 5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공격에서의 창의성과 속도는 상대 수비를 무력화시켰고, 미드필드의 조율 능력도 탁월했다. 특히 네드베드는 당시 유럽 최우수 선수답게 공격과 수비를 넘나들며 리더십을 발휘했다. 하지만 체코의 상승세는 준결승에서 마침표를 찍게 된다. 상대는 수비 축구의 대명사로 떠오른 그리스였다. 체코는 경기 내내 점유율과 공격 기회를 압도했지만, 단단한 수비 벽을 끝내 뚫지 못했다. 네드베드는 전반 중반 무릎 부상으로 교체 아웃되었고, 그 여파는 팀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졌고, 연장 전반 종료 직전 트리카리스의 코너킥을 하리스테아스가 머리로 연결하면서 골을 넣었다. 당시 규정이었던 ‘실버골’에 따라 경기는 바로 종료되었고, 체코는 탈락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체코야말로 이 대회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팀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단기 토너먼트에서는 항상 최고의 팀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실수를 적게 하고 기회를 확실히 잡은 팀이 승리하는 법이다. 체코는 아름다운 축구를 했지만, 효율성과 결과 면에서는 그리스에 밀렸다. 이는 축구의 또 다른 진실을 말해주는 장면이었다.
그리스의 유로2004 우승은 단순한 이변이 아니었다. 철저한 준비, 전술에 대한 신뢰, 선수들의 헌신적인 실천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프랑스와 같은 스타군단도, 체코처럼 유기적인 전술팀도 결국 그리스의 전략 앞에 무너졌다. 이 사건은 세계 축구사에 큰 교훈을 남겼으며, ‘약팀이라도 강팀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오늘날에도 이 대회는 전술과 팀워크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